2013년 5월 19일 일요일

adult[야설] 비밀의 방 2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여전히 눈만 말똥거린다. 지금이라도 다시 현우의 방문을 두드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도 나를 여자로 여기고 나의 매혹적인 몸매에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엉뚱한 판단을 한다. 이정도면 충분히 현우의 마음을 현혹시켰으리라고 자위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품위와 인격을 지키고 그가 나에게 빠져들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가까스로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침실 창문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눈을 떴다. 갑자기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벌떡 일어났다. 부리나케 일어나 세면을 하는 동안 잠이 깬 민호가 거실로 나와 배고프다고 칭얼거린다. 식사 준비를 하고 민호와 둘만이 식탁에 앉았다. 남편의 빈자리가 허전하다. 누군가 빈자리를 채워주면 한결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남편을 기다리며 외로워야할 내가 변하고 있다.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현우의 모습이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이 시간에 현우는 캠퍼스로 갔을 것이다. 식탁을 치우고 갑갑한 집안을 탈출해 정원으로 나선다. 의외로 반가운 정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캠퍼스에 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 현우가 정원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놀람과 반가움이 앞섰으나 태연한 표정으로 가다듬는다.
“현우 학생! 오늘 학교에 안 나간 거야?”
“하하.......! 오늘 일요일이잖아요.”
그의 답변에 쑥스러워진다. 무엇 때문에 일요일인 것도 잊었는지 모를 일이다. 다만 갑자기 머릿속이 바빠진다. 치마꼬리를 붙잡고 있는 민호가 현우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헤픈 웃음을 흘린다. 역기를 내려놓은 현우가 성큼 다가와서 민호를 번쩍 안아 올렸다. 현우의 근육으로 다져진 상체에 안긴 민호를 보며 마치 내가 안긴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민호야! 형하고 같이 놀까?”
“응, 신난다.”
그들의 대화소리를 들으며 햇살이 포근하게 느낀다. 자꾸만 그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떠오르지를 않는다. 혼란스럽던 머릿속에 햇살처럼 반짝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에게 우선 물어봐야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그의 약점을 이용하여 점잖게 어른스럽게 말해야 인격에 손상이 없을 것이다. 아니 가장 여성스럽게 보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현우 학생! 아침 식사는?”
“아직요. 누님이라고 하기로 했으니 그냥 현우라고 불러 주세요.”
그의 말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비록 누님이라고 하지만 주인집 아줌마의 품위는 지켜야 한다. 적어도 은밀한 관계의 시작은 그의 탓으로 돌려야한다. 지켜야할 도리를 넘는 것은 현우의 적극적인 태도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뒤돌아서며 그의 시선을 의식한다. 걸음을 어떻게 옮겨야할지 모르겠다. 그가 내 엉덩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치마 밑에 들어난 종아리가 아닌지, 잘록한 허리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해야 할일이 발생했다. 어떤 문제인가를 해결하기 위한 구실이고 적어도 나의 자존심을 무너트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다. 민호와 현우는 잘 어울릴 것이다. 빠르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주방으로 향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은 현우를 위해 준비할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다.
조리대 위에 생선 토막을 올려놓았다. 불판에서 구어지기 시작한 생선의 바다냄새를 느끼며 생각한다. 그가 생선을 좋아할 가, 아니면 육류를 좋아할 가. 반찬은 무엇을 좋아할는지. 김치는 생것을 좋아하나, 아니면 신맛을 좋아하나. 손과 머릿속이 공연히 바쁘다. 얼큰한 동태찌개도 괜찮을 것 같다. 나름대로 최단 시간 내에 식탁을 차려놓고 바라본다. 어딘가 부족한 것 같지만 지체할 수 없이 정원으로 나갔다.
“현우......! 급하게 차렸는데 들어와서 식사 좀 하지.”
“네.......!? 네, 고맙습니다.”
현우, 그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민호를 안고 다가온다. 그를 처음으로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순간이다. 거실로 들어온 그가 두리번거리고 살핀다. 식탁으로 그를 초대하고 민호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 겸연쩍은 모습으로 식탁 앞에 앉은 그가 식사를 시작했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떡하나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먹음직스럽게 식사를 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만족한 미소를 흘린다. 수저를 놓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물이 담긴 컵을 식탁위에 올려놓는다. 그의 싱그러운 미소를 느끼는 순간 내가 새삼스럽게 여자임을 느낀다. 물 컵을 단숨에 비우고 일어선 그가 아주 만족한 표정을 한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 같았어요.”
“다행이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의자에서 돌아서는 그와 마주쳤다. 젊은 남자의 체취가 가득히 밀려온다. 그의 가슴에 안긴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린다. 지그시 내려다보는 눈빛에 도취될 것만 같다. 아직도 그를 감동시킬 일이 남았다. 거실로 나가는 그의 등을 향해 재빠르게 물었다.
“커피는?”
“커피도 주시겠어요? 주시면 고맙게 마실게요.”
물론이다. 그를 위해 맛있는 커피를 준비할 마음으로 가득하다. 그의 커피 습성을 물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식구들이 내가 타는 커피 맛이 정말 좋다고 했다. 남편도 내가 타주는 커피를 제일 좋아한다. 헤이즐넛 커피로 보통 사람의 커피 량이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커피를 타서 갓 시집온 여인처럼 다소곳하게 그가 앉은 앞의 식탁 위에 놓았다.
“카피 맛이 마음에 들는지 모르겠어.”
두 손으로 쟁반을 들고 서서 현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김이 서린 커피 잔을 들어 후후 불어낸 그가 한 모금을 마신다. 민호도 나도 그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바라본다. 커피를 마시는 그의 모습마저도 멋들어진 남성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한 모금을 마신 그의 얼굴에 환한 표정이 떠오른다.
“맛있어요. 누님은 솜씨가 좋으세요.”
“그래.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예요. 커피를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향기가 좋아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다른 걸 줄걸 그랬나?”
“아네요, 식사 후에는 한잔씩 해요.”
커피를 마시는 그를 뒤로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면서 그의 눈치를 살핀다. 식사를 차려주는 여자가 제일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힐끔힐끔 나의 뒷모습을 훔쳐본다. 그의 시선이 향한 엉덩이가 간지럽다. 아니 짜릿하다. 조금 성적 매력이 돋보이려면 허리를 비틀며 움직이는 것은 어떨는지. 아니다, 그럼 천하게 보일 수도 있어서 기품 있게 보여야 한다.
돌아서면서 그의 눈치를 살핀다. 젖가슴을 향하는 현우의 시선을 느낀다. 그가 보기에 내 젖가슴 사이즈가 가장 성적 매력이 있으리라 믿는다. 아니면 조금 크게 보이기 위해 가슴을 내밀어야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혼자만의 생각이고 그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슬퍼지는 나 자신을 감당할 수 없다.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데, 그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님 잘 먹었습니다.”
“잘 먹기는.........!?”
그가 가려고 한다. 그를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가버리면 허전해 질 것 같다. 가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다. 그러면 내 자존심은 무너지고 품위도 없는 여자로 전락할 것이다. 그냥 기품 있는 여자 모습으로 보내야한다고 생각해서 미소만 지었다. 소파에 앉아서 남아있는 그의 체취로 만족한다.
그가 사라진 거실에는 정적이 감돈다. 민호가 엄마 마음도 모르고 같이 놀아달라고 칭얼거린다. 어린이용 비디오테이프를 틀어 주었다.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는 민호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번진다. 할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손아귀에 힘이 풀린다. 허탈감에서인가, 어제 잠들지 못한 탓에 졸음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민호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거실 바닥을 뒹군다.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눕혔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무엇인가 해야 할일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깜박 잠이 들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인적이 없는 은빛 모래사장의 바닷가였다. 나는 고귀한 황녀처럼 등나무 비취의자에 비키니 차림으로 누워 있었다. 누군가 다가온다. 다부진 체격의 장현우였다. 싱그러운 미소로 다가와 나의 발가락에 입맞춤을 한다. 결코 동요하지 않는 표정으로 그의 애무를 받는다.
그는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을 하나씩 벗겨낸다. 음부까지 들어낸 알몸이 된다. 그래도 품위 있는 자태를 잃지 않는다. 그의 입술이 젖가슴을 거쳐 밑으로 내려간다. 목덜미를 거쳐 허리를 지나 허벅지 사이에 그의 머리가 파묻힌다. 고귀한 여자로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 인내하고 음미할 뿐이다. 그러나 남성의 심벌이 꽃잎처럼 펼쳐진 음순을 헤집을 때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신음을 터트린다.
신음소리와 동시에 눈을 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잠에 찾아온 꿈이었다. 혼자서 놀던 민호는 거실 바닥에 잠들어 있고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비디오테이프가 종료되어 지지직거린다. 허벅지 사이가 축축하다. 꿈이었지만 몸 속 깊은 곳에서 쾌감의 샘물이 흐른 것이다. 누군가 보는 사람이 없어도 창피스럽지만 아직도 쾌감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다만 오르가즘의 절정을 느끼지 못해 아쉽다.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팬티를 벗고 음부를 씻어낸다. 갑자기 생리한 날자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굳이 기억해 내기가 싫다. 타월로 허벅지 사이를 닦아내면서 클리토리스를 문지른다. 내 손에 의한 자극인데도 짜릿하다.
잠에서 깨어나서 쉴 사이 없이 또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들어 있는 민호를 안방에 눕히고 정원으로 나왔다. 벌써 해가 중천을 지나고 있다. 뭘 해야 하는지 생각이 떠올랐다. 왠지 내 자신이 두려워지지만 집안으로 들어왔다.
화장대 앞에 앉았다. 거울 속에 현우의 수려한 얼굴이 떠올랐다. 입술에 진한 장미색 립스틱을 바른다. 진한 색은 천하게 보여서 품위를 손상시키고 젊은 그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바른 립스틱을 지운다. 선홍색 립스틱이 좋을 것 같다. 선홍색에서 나오는 파장은 남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뇌하수체를 자극해 남성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짙게 바르면 오히려 남성을 불안하게 하므로 살짝 바르는 것이 좋겠다. 옅은 화장을 하고 보니 걸치고 있는 옷이 마음에 안 든다.
걸치고 있는 치마와 니트웨어를 벗어 던진다.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으로 거울을 본다. 비록 살집이 붙었지만 처녀시절의 각선미가 남아있다. 약간의 살집은 도리어 관능미를 살려줄 수 있을 것이다. 장현우같이 젊은 남자는 스포티한 의상을 걸친 여자를 좋아할 것 같다. 청바지와 붉은 티셔츠를 걸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부드러워 보이지 않는다. 만약에 그와 스킨십이라도 한다면 몸을 감추어 버린 의상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벗어 버린다. 옷장 안을 뒤적이다보니 주름진 플레어스커트가 눈에 들어온다.
무릎 밑에 찰랑거리는 스커트 위에 촉감이 좋은 블라우스를 걸쳤다. 거울 앞에서 앞뒤로 돌아서며 옷을 걸친 몸매를 바라본다. 찰랑거리는 스커트 자락위로 탐스런 엉덩이의 윤곽이 마음에 든다. 현우의 시선을 현혹시킨 만큼 여성스러워 보일 것 같다. 거울에 비친 창문에 누군가 침실 안을 드려다 보는 것 같다.
돌아서서 창문을 바라보니 그림자가 사라졌다.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봤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집 모퉁이로 사라진다. 갑자기 쾌재의 미소가 번진다. 장현우, 그였을 거라고 판단한다. 그가 내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던 것 같다. 분명히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의 몸매도 보았을 것이다. 나 혼자 그를 생각하고 있던 것이 아니고 그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데 위로가 된다.
민호가 깊은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거실을 지나 현관을 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집 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뒷방으로 들어가는 현관문 앞에 현우의 모습이 보인다. 침실 안을 훔쳐보고 있던 사람이 현우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몸매를 훔쳐 본 사실을 감추려는지 빠른 걸음으로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어디 다녀오는 거야? 점심은.......”
“라, 라면 끓여 먹으려고요.......라면 같이 먹을래요?”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소년처럼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가 손에든 봉지를 들어 보였다. 그가 슈퍼에 다녀오다가 침실 안을 들여다 본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라면이 담긴 봉지였다. 라면을 같이 먹자고 하는 제안은 같이 있고 싶다는 의미라고 내 멋대로 추측한다.
“음, 그럴까! 내가 끓여 줄게.”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다가섰다. 갑자기 허기짐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모두 허기졌다. 라면이 담긴 봉지를 받아들고 자연스럽게, 익숙한 걸음으로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현관으로 들어갔다. 내 집이지만 그가 이사한 후에는 처음으로 들어가는 방이었다. 제일 먼저 남자의 체취를 강하게 느낀다.
다섯 평 가깝게 넓은 방안의 광경은 의외로 섬세하다. 한쪽 벽에 넓은 침대와 옷장, 오디오와 컴퓨터가 놓인 책상과 등 높은 의자. 텔레비전을 향해 놓인 유리판이 깔린 탁자와 가죽시트의 의자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책꽂이에 가지런히 진열된 책과 액세서리, 비스듬히 세워진 기타가 방주인의 성품을 느끼게 한다.
한쪽 벽에는 근육으로 뭉친 상체를 들어낸 외국 남자배우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브레드피드인지, 로버트 레드포드인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액자 밑에 놓인 기타를 보고나니 문득 그가 이사 온 후에 간간이 들리던 기타의 멜로디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한 기억이 살아난다.
서슴없이 방과 연결된 주방의 싱크대 앞에 섰다. 싱크대 진열장에는 많지는 않지만 접시와 컵, 냄비와 그릇들이 여자들이 정리한 것처럼 포개져 있었다. 냄비를 꺼내 물을 부어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뒤돌아섰다. 방 한가운데 그가 넋을 잃고 서서 있던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예약 없이 침입한 나에게 어떤 표정을 해야 하는지 고심 중인 모양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태연하고 의젓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 참, 계란과 파를 넣으면 더 맛있겠네.”
“.........!?”
말을 해놓고 뒤돌아섰다. 어차피 그의 대답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이 순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세 들어 사는 그에게 자상한 주인아줌마로 보이는 것이다. 단숨에 집으로 돌아가 계란과 파, 김치와 반찬을 담아 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민호가 깨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끓는 물에 라면을 넣는데 등 뒤로 그가 다가왔다. 그의 숨결을 느낀다. 어쩌면 나를 끌어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긴장을 한다. 그러나 나를 지나쳐간 그가 싱크대 한쪽 벽으로 갔다. 정말 그가 껴안으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는데 왠지 서운하다. 그가 벽을 툭툭 치며 물었다.
“이 문은 어디로 통하지요?”
“문.......!?”
그가 두드리는 벽을 바라봤다. 그때 잊고 잇던 것을 발견했다. 벽이 아니라 문이었다. 원래는 안집 거실에서 뒷방으로 통하는 출입문이었다. 뒷방이 필요 없기에 세를 들이고 나서 잠가서 폐쇄한 출입문이었다.
“아! 거실로 통하는 문이었어.”
“이곳이 어디로 통하는 것인가, 궁금했어요.”
장현우의 말을 듣는 순간 치부가 들여다보이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노부부가 살고 있을 때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는데 문을 통해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를 모두 듣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느낌을 표현할 필요는 없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다시 등 뒤로 다가선 그의 손길이 옆구리를 스친다. 스치는 손길에 어떤 반응을 보일런지 실험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가 나의 어깨너머로 손을 뻗쳤다. 어깨를 껴안을 것만 같아서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싱크대 진열장을 열고 컵을 꺼낸 그가 냉장고 문을 연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의 물이 끓기 시작했다. 끓고 있는 물에 라면을 넣으면서 나는 공연히 바쁜 것처럼 손놀림을 한다. 스프를 넣고 계란을 깨서 라면이 끓기 시작한 냄비 안에 넣었다.
냉장고 안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따라 단숨에 들이키는 그의 모습을 훔쳐본다. 일부러 무관심한 표정으로 수도꼭지를 틀고 파를 닦기 시작하는데 그의 손이 겨드랑이 사이로 쑥 들어왔다. 그가 젖가슴이라도 더듬을 것 같아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물 마신 컵을 세척대 안에 넣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가 분명히 내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스킨십을 시도하려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를 썰기 시작하면서 여전히 등 뒤에 서서 있는 그의 숨결을 느꼈다. 파를 써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얻어 놓은 그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누님, 조심하세요. 칼날을 갈아 놓았거든요.”
“응......! 괜찮아.”
괜찮다는 말은 어쩌면 스킨십을 해도 괜찮다고 그에게 승낙한 것 같아서 흠칫 놀란다. 어깨에 얹은 손이 슬그머니 허리를 스친다. 감각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태연하게 파를 썰어 냄비 안에 넣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그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꼴깍하고 들렸다. 그리고 허리를 스치고 떨어졌던 그의 손이 다시 허리에 와서 닿는다. 전달되어오는 그의 체온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온몸이 짜릿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습기어린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왔다.
“누님 뒷모습이 아름다워요.”
“지금은 별로........결혼 전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지만.”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드디어 장현우가 적극적인 스킨십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무감각한 것처럼 보여야 하기에 그의 손길을 거부하거나 불쾌한 표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의 손길이 대담하게 허리선을 보듬으며 힘을 주었다. 허리를 보듬는 그의 손길에서 떨림을 느낀다. 순간 감각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후회스러웠다. 그가 허리에 두른 손을 떼어내고 소파로 가서 앉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라면이 완성되고 식사를 할 준비가 되었다. 식탁도 없어서 탁자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라면과 반찬을 올려놓았다. 탁자를 마주하고 소파에 앉았다. 그가 싱그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균형 잡힌 체격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소년 같이 순수함이 피어난다.
“와~! 맛있겠다.”
“..........!”
미소로 대답을 하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그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젓가락을 움직인다. 되도록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라면을 끓이는 시간은 길었지만 짧은 시간에 식사를 마치는 것이 아쉬웠다.
식사를 마친 그릇을 설거지 하면서 조바심이 난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리를 했으나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현우가 이따금 나의 뒷모습을 힐끔거리고 쳐다본다. 그의 시선이 유난히 찰랑거리는 스커트위로 들어난 엉덩이를 살피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나는 어설픈 미소를 흘린다.
설거지를 마치면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배려에 염려를 하지 않았다. 세척한 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고 돌아서는데 그가 소파에서 일어서서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일을 끝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내가 차를 타줄게요. 보이차 마셔봤어요?”
“보이차! 그게 뭔데?”
“직접 맛을 보세요. 잠간만 기다릴래요?”
주방의 일을 장현우, 그와 교대하였다. 소파로 가서 여유로운 자세로 앉았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재 방송중인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가끔 시청했던 드라마로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애정 갈등을 그린 멜로물이었다.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려놓은 그가 진열장에서 빨간 원통을 꺼내 들었다.
헐렁한 티셔츠에 추리닝 바지를 걸친 현우의 뒷모습에서 진한 남성미를 느낀다. 둘둘 말아 접은 바짓가랑이 밑으로 들어난 종아리의 근육은 보니 심장 박동이 높아진다. 원통에서 갈색 가루를 꺼내 찻잔에 넣고 딸그락거리며 젖는 소리 외에는 조용하기만 했다. 뭔가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보이차가 뭔데?”
“아버지가 외교관인데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죠.”
두 개의 찻잔을 쟁반에 받쳐 든 그가 돌아섰다. 탁자위에 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서파에 앉은 내 옆에 와서 털썩 앉았다. 그의 몸무게에 의해 탄력을 받아 내 몸이 흔들린다. 그의 체격에 비해 내 몸은 보잘것없이 나약해 보였다. 그가 내 앞에 놓인 찻잔을 스푼으로 저어주며 싱긋이 미소를 짓는다.
“들어 보세요. 향이 좋아요.”
김이 피어나는 작은 찻잔을 들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의 말대로 향기가 특이했다. 설명을 들어서인지 중국의 풍경이 떠올리는 향기였다. 그러나 한 모금을 마셔보고 생각한 것만큼 좋은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톡 쏘는 향기가 너무 진하게 느껴 조금은 역겨웠다. 그러나 그의 성의를 봐서 싫은 표정을 할 수 없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깊은 눈빛이 나를 빨아 드릴 것 같았다.
“어때요?”
“향이 특이하네. 진 하구.”
우리는 찻잔을 들고 홀짝 홀짝 마시며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했다. 두 남녀가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그의 표정을 살폈다. 힐끔 나를 바라보는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 쓴웃음을 지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남자와 헤어진 여자 탤런트가 바닷가에서 지나간 추억을 회상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